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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지역

마대산 (영월)

by 백산_운해 2018.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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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대산 (영월)

 

날 짜 : 2011. 7. 23() 작성자 운해

구 간 : 주차장 김삿갓주거지 삼거리 마대산(정상) 전망대 처녀봉 주차장

목적산 : 마대산(1,052m)

김삿갓이 잠든 영월 와석골82년발견

살다 보면 한번쯤 "그래, 여기만 살데냐"하는 객기가 오를 때가 있다. 그러나 난고 김병연(18071863)은 객기 정도가 아니라 도저히 세상 한가운데에 살지 못할 사람이었다.

평생 산하를 떠돌며 시와 술로 숨을 내쉰 그를 사람들은 김삿갓이라 부른다. 김삿갓은 강원도 영월 땅에 잠들어 있다. 생전에 아들에게 "나 죽으 면 여기 묻으라" 유언했던 와석골 노루목 양지바른 곳에.

영월읍 동남쪽 길로 영월화력발전소, 고씨동굴, 와석재 고개를 차례로 지나 옥동초등학교 주석분교 옆 옥동천 계곡길로 걸어 올라가면, 좁고 깊은 계곡이 돌연 펼쳐진다. 와석골 노루목. 지금도 큰길에서 한시간 반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오지다. 김삿갓은 자신의 조상과 관련된 일로 이 척박한 땅에 들어와 살다 가 결국 세상을 등졌다. 그는 조부 김익선의 불충을 비웃는 글을 써 과거에 합격했으나, 그 일이 두고두고 가슴에 맺혀 평생 삿갓 쓰고 평생 하늘을 보지 않았다. 주민 신춘선(63)씨는 "요즘같으면 할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 욕을 하고도 벼슬을 했을 것"이라며 "삿갓 시대에나 가능한 철학"이라고 말한다.

김삿갓 집터는 묘에서 왼편으로 2위쪽 산행길이다. 가벼운 산 행길. 그 길엔 돌복숭아, 물봉선화, 갈대가 무성하고, 집 마당엔 들풀들이 가득하다. 옆에는 개울이 흐르고 약초꾼과 화전 해먹던 사람들이 살고 간 흔적이 쌓여 있다. 주춧돌과 기둥 일부를 제외하고는 1백여년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거쳐간 사람들이 지붕을 얹고 흙을 새로 바르고 외양간을 내 삿갓의 내음은 모두 사라졌다. "여기서 뭘 생각하며 살았누" 탄식이 절로 난다.

계곡내 모든 '화살표'들은 삿갓이 사랑했던 민초들이 세웠다. 삐딱하게 세운 화살표, 유성매직으로 쓴 '김삿갓 유적지', 없애버렸더니 화가 잇달아 다시 세운 시선 당집 등. 묘소 건너에는 서울사람이 지금 전통찻집을 만들고 있다. 비포장길은 경상도 영주까지 뚫려 있어 아마도 김삿갓이 방랑벽이 도지면 사통팔달 운신하기 쉬웠을 터. 이제 김삿갓묘가 있다는 소문에 한 여름이면 자연과 위대한 시선의 흔적을 밟으려는 외지인들로 붐빈다.

 

 

산행자료 다운받기

 

110723-마대산.hwp

 

시간대별 진행

 

  07:30  출발지

  08:20  고속도로진입

 

  12:20  김삿갓공원 주차장 도착(산행준비)

  12:30  산행출발

  13:00  김삿갓 주거지 도착(선두)

  14:20  갈림길도착(점심식사)

  14:50  출발

  14:55  마대산 정상(사진촬영) 

  15:00  출발

  15:25  전망바위

  15:40  처녀봉

  16:10  민가

  16:30  합수점(갈림길) - 15분간 휴식

  

 

  

김삿갓(김병연)의 생애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金炳淵, 호는 난고蘭皐, 1807-1863)으로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 났다.  평안도 선천부사였던 조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의 난 때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을 당하게 되자 노복의 도움으로 형 김병하(金炳河)와 함께 황해도 곡산에 도망가 살았다.  후일 멸족(滅族)에서 폐족(廢族)으로 사면되어 모친과 함께 곡산을 떠나  할머니가 계시는 광주를 걸쳐 이천, 가평을 전전하다가 강원도 영월에 정착하게 된다.

 

  당시 반역으로 인한 죄는 연좌죄로 가문의 3대를 멸족하는 것이 통례였으나 이들 모자 가 처벌되지 않았던 것은 당시 실권세력이 안동김씨였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리하여 떳떳한 사대부로는 지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양반가의 기풍을 갖춘 金炳 淵의 어머니는 인적이 드문 산골에 은거하면서 아들에게 틈틈이 글을 가르쳤다.

 

   가문의 내력을 알지 못한 채 학업에만 정진하여 온 김병연은 훗날 영월도호부 과거에 응시하여 [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牛天]이라는 詩題로 장원급제하였다.  뛰어난 글 솜씨로 장원을 하게 된 김병연은 그 후 어머니로부터 집안내력에 대해 전해 듣고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감과 폐족의 자손이라는 주위의 멸시 때문에 20세때 처자식을 둔 채 방랑길을 떠난다.

 

  이때부터 김병연은 죄인으로서 하늘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하여 삿갓에 죽장을 짚은 채 돌아다녔다. 금강산을 시작으로 전국 8도를 떠돌았으며 도산서원 근처와 황해도 곡산 등지에서는 훈장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전라도 화순에서 한 많은 삶을 마감하였다(1863년).   (인터넷 발췌)
 

  1982년 김삿갓 거주지가 발견되면서 영월에 시선 김삿갓의 유적복원이 한창이다.

  면이름도 김삿갓면으로 최근에 바뀌었다고 한다.

  계곡이 아름답고 물이 좋아서 여름산행지로 선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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